관동대학살
작가의 일기와 수기에는 지진의 경험과 보고 들은 학살의 기록을 주로 드러냈다. 대지진에서 살아남아 학살을 피한 조선인은 재난 현장을 떠나 피신하였지만, 그들이 머문 피신처에서도 유언비어는 난무하여 조선인의 박해는 극심하였다. 작가들은 표현의 규제와 검열 문제로 작가들이 일본 당국을 경계한 탓에 도쿄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당국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한계를 보였다. 보도 규제가 해제된 후에도 언론에서는 ‘학살은 불령조선인의 폭동에 대한 자위적 행동’이었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서슴지 않았다.